김용석, 『철학광장』
2011. 2. 1. 04:01ㆍ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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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온 글들은 <한겨레>에 연재했던 문화칼럼을 수정하여 모은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한겨레>를 참 많이 지지하고 있다. 언론의 빅브라더화에 대항하는 언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조작이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대중들에게 사유의 자유를 좀 더 허락하는 언론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 역시 <한겨레>스럽지는 않다.
대중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낸 칼럼이라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대중문화를 철학적인 접근으로 현상을 해석해 낸다.
저자가 의도적인 것일지는 몰라도 깊은 철학이라기보다는 광범위하게 아우르는 철학의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역설적인 표현으로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독자가 처음 듣는다면 의아함을 가질 만한 표현으로 독자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이다.
양립할 수 없는 '파격'과 '조화'라는 단어로 한 문장을 만들고 거기에 대해서 이해가 될 법한 기막힌 설명을 한다.
철학적인 접근을 하였지만 글은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주관적인 해석인 듯 하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대한 철학적 접근 방법으로 '유토피아'의 개념을 들고 나온다.
저자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유토피아'라고 설명하면서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해서는 칸트를 빌려 설명한다.
'각 개인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인간 공동체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한 칸트의 말을 빌려,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나타난 현상을 설명하는데, 개인의 자유가 '자율의 실용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권력이 필요없는 권력의 부재가 나타났고, 유토피아가 가능했다고 설명을 한다.
하지만 권력의 부재가 '유토피아'를 설명하는데 충분할까?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정말 보장되었는지는 참석한 사람도 알 수가 없다.
<한겨레>의 칼럼니스트인 김선주씨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인권운동 흐름의 총체적 발현이자 클라이맥스라고 이야기 한다.
반전 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자유를 노래했던 40만이 모여 2박 3일간 비 오는 진흙탕 속에서 평화롭게 진행된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이제 없다.
짧은 행사로 끝난 지속 발전 가능하지 않은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과연 '유토피아'일 수가 있는가? 오히려 짧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상적인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김선주씨는 그렇게 반전을 외치고 평화와 자유를 노래했던 2백만명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고 있는가 반문한다.
그렇게 강렬했던 페스티벌이 없었던 듯 감쪽같이 사라진 부재를 더 크게 인식한다. 과연 유토피아였는지 의문스럽다.
책을 읽다보면 철학은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현상에는 그 이면이 있는데 특히 철학적 접근은 그 이면을 쉽게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마치 철학을 도구로 사용하는 접근인 듯 하다. 그리는 도구가 달라지면 전달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지게 된다.
가령 화장품 광고에 관한 철학적 접근에서는 화장은 파격에 이르는 조화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아까 얘기 했던 역설적인 표현이다. 조화가 어떻게 조화를 깨는 파격에 이른단 말인가? 하지만 저자는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장 보들리야르의 차이의 소비 이론으로 설명했으면 더 깔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철학적 접근인 셈인데 화장은 남들과 달라지려는 차이의 욕구에 의해서 작용한다고 보면 결국 그 차이를 통해서 신분 상승이 일어나게 되고 그 편입한 그룹에서 조화와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한다면 좀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또한 다이어트에 대한 것도 하이퍼 리얼리티를 통해 설명했다면 좀 더 깊은 설명이 되었을 것 같다.
저자가 대중문화의 이면에 있는 철학적 요소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그래서 뭐? 라고 반문할 수 있도록 결론이 나지 않는다. 대중문화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이면을 봐야 한다는 메세지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책 전체를 통해서 책의 주제를 찾을 수 있다. 대중문화의 코드에는 철학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대중문화의 이면은 철학적 접근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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