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2011. 2. 9. 18:18ㆍ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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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전에 라떼와 함께 이 책을 읽었다.
이전에 <바람이 분다, 가라>라는 책을 수업 관련하여 읽었는데, 다시 읽어봐야 할 듯한 기분이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것은 한강이라는 작가의 이미지인데 투명한 느낌의 작가였다.
제목이 <채식주의자>이긴 하지만 3가지 소설을 한데 묶은 책이고, 그 중 한 소설의 제목이 <채식주의자>였다.
아무래도 중심되는 사건의 발단은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시작된다.
읽다보면서 한강이라는 작가의 이미지와 글의 느낌은 참 이질적이면서도 그 사람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감각적이고 파격적이었다.
돌연 꿈을 꾸어서 더 이상 육식을 할 수 없다는 영혜는 채식을 시작하게 되고, 억눌린 것들이 발현된다. 과거에 경험했던 육식의 폭력을 자신의 육체로 빚을 갚아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극단적으로 꽃이 되고, 나무가 되려고 한다.
정상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채식을 시작한 이유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인과관계 없는 사건의 발현을 정상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이 부조리 가운데서 존재한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부조리 가운데 정상 사람들이 사는 것이 정상인지, 아니면 영혜와 같이 죽음으로 환원하는 과정이 부조리 세상 가운데 살 수 없는 진짜 부조리세상의 시민의 모습인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나오고 인혜의 남편이 나오는데 인혜의 남편은 비디오예술가이다. 그 남편 역시 추구하는 것은 이상이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데 영혜가 몽고반점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말에 영혜를 향한 욕망이 시작된다.
몽고반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먼 과거의 흔적이고, 회기의 본능일까? 인간의 회기 본능의 종점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꽃이 되고 싶은 영혜는 인혜 남편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서로 이상을 바라보며 섹스를 한다. 그리고 인혜의 가정은 파괴된다.
영혜와 인혜의 남편은 정신병원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인혜의 남편은 구속 현장에서 베란다로 뛰어내리려 하다가 제지를 당하는데 그 때 그가 가진 감정은 공포였다. 날기를 소망했던 그는 이상세계인 죽음으로 환원하려 했지만 현실세계에 붙잡히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긴다. 그의 작품, 그의 인생까지도.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나무불꽃>은 인혜의 이야기이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영혜를 돌보면서 인혜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기서 영혜는 나무가 되어가고 이상세계를 향해 죽어간다. 인혜는 그런 영혜와 자신의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자신은 살아왔던 게 아니고 그저 삶을 견뎌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혜가 나무가 되어 죽어가려던 것은 육식을 하는 것이 폭력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남에게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중간에 번뜩 든 생각은 행복으로 오르는 것에는 만성이 생길 수도 있고 계속해서 높이 올라갈 수가 없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기파괴의 과정에는 만성이 생길 수도 없고 그저 한없이 떨어질 뿐이라는 것이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소설을 읽을 때는 작가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데 가지는 색 덕분에 로맹가리의 필명,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앞의생>을 발표하고 상을 받았을 때,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을 알아챈 독자가 있었던 것 아닐까.
요새는 책을 읽는데 깊게 빠져서 못 읽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항상 지하철을 탈 때나 버스에서 읽기 때문에 푹 빠져 읽지 못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바쁜 요즘이 지나고 나면 시간을 잡고 고전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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