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내 젊은 날의 숲』
2011. 3. 2. 23:45ㆍ책
밤 10시가 지나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펼쳤다.
부드러운 음악의 선율에 또 울컥하고 만다.
가슴 속에 따뜻한 눈이 쌓여있다가 울컥하는 마음에 '스르륵'하고 녹고야 만다.
음악 때문이 아니란 것을 안다.
오래동안 쟁여두었던 <내 젊은 날의 숲>이다.
밤에 이 책을 찾는 것을 보면 소설이 틀림이 없고, 자꾸 마음을 흔드는 책임에 틀림이 없다.
그저 바람에 한 번 흔들리는 갈대같은 종류인지, 바람 맞아 영원히 휘어진 소나무가 될런지는 알 수가 없다.
줄거리를 적기에는 차분치가 않다.
주인공 영주와 영주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피의 인연이 거기에 있다.
안요한과 선우의 모습 속에도 유전을 발견한다. 전혀 상상하지 못 했던 안실장의 전 부인에게서도 선우와의 유전을 발견한다.
그리고 영주는 숲을 그린다. 숲은 번식하지만 서로가 다 다르다.
유전하면서 인연이 없고, 저마다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김훈은 숲에서 생명과 죽음을 발견하고, 말하지 못 했던 '사랑'과 '희망'을 말한다.
겨울 속에서도 움트는 생명을 말하며 밤과 낮의 모습을 말하며, 죽음으로의 회기 속에서 삶의 순환을 말한다.
처음 책을 펼쳐 읽으면서 본 단어는 '아버지'이다.
거기에서 나는 주인공이 딸임을 암시받았는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작년 9월에 이감되었다.' 에 무엇이 드러났던 것인지 무엇이 결핍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여성의 눈으로 그려진 소설은 남성의 느낌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건조함은 남자의 그것이었고, 투박한 섬세함 또한 남자의 그것이었다.
그래도 김훈 특유의 첨예한 묘사는 끊이지가 않는다.
제목은 어째서 <내 젊은 날의 숲>인걸까.
김훈은 아마도 자연에 많은 것을 물었고 자연은 많은 답을 주었을 것이다. 그것을 기록한 책이라고... 나는 생각을 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현의 노래>같이 역사 속 인물의 내면을 쓴 글보다는 소설이 김훈과 맞다고 느꼈다.
보이는 숲을 보고 보여지는 숲을 보면서 바라보고 묘사하는 것을 보면 아름다웠다.
내가 기억하는 수목원의 모습은 세월을 알 수 없는 거목의 밑둥 뿐이다. 축축하고 청량했던 느낌이다.
추억 속에 떠오른 나무 하나는 경복궁에서 자경전 뜰 앞 3그루의 은행나무 뒷쪽으로 있는 꺽어진 곳에 있는 말채나무 한 그루였다.
그 또한 밑둥만 기억하는데 기름지고 축축하며 부드러웠다. 청량했고, 안아보면 따뜻하였다.
그 아이가 그랬었다. 경복궁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짚어가며 이름을 알려주곤 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너무도 닮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말채나무 같았다. 자귀나무가 좋다고 하였지만 그 아이는 그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 아이가 나의 <내 젊은 날의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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