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2011. 1. 6. 00:29


카타리나블룸의잃어버린명예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하인리히 뵐 (민음사, 2008년)
상세보기


예전에 토론회에서 선정하여 토론하게 된 책이었다.

언론정보학과 친구들과 토론하다보니 새로운 분야의 책(사실 새로운 분야도 아니고 유명한 책이지만...)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또한 언론정보학과 친구들이 선정한 책인데 옐로 저널리즘에 관해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오래 전 쓰여졌지만 아직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새는 우리나라처럼 기자하기 쉬운 나라가 없다고들 말한다.
오마이뉴스같은 시민이 참여하여 기사거리를 만들어 내는 언론매체를 진정 언론매체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토의를 했지만 언론정보학과 친구들은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오마이뉴스의 객원기자는 진짜 기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객원기자들은 인터넷에서 가십거리를 찾아서 그것을 보는 네티즌들의 염통을 쫄깃하게 만드는 게 그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는 매일매일 쏟아져 나온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역할은 적은 것 같다.
최근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지하철 성추행 파문이었는데 시민 중 누군가가 동영상을 찍어 글을 올린 것이 기사화 되고 공중파 뉴스에까지 퍼지면서 지하철 성추행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처음 출처 역시 인터넷이었고, 기자들이 그것을 덥썩 물어 공론화 시킨 것이었다.
그에 반해 부정적 역할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누군가 재미삼아 자동차 디자인 한 것을 기자란 사람이(진짜 기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덥썩 물어 현대자동차의 신차라고 기사를 띄운 것이다. 그 덕분에 현대자동차의 주가가 엄청 뛰었으나 그것이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가가 곤두박질 쳤다.
내 생각에는 부정적인 역할이 더 많은 듯 하다.
언론의 자유라고 하면서도 기자의 자격에 대한 제한까지 풀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한 여성이 사랑을 했는데, 그 대상이 수배범이었다는 것 하나 때문에 그 여성에게 언론의 폭력이 가해진다.
그 여성은 언론의 보도에 의해 졸지에 창부가 되었으며 정황을 모르고 언론만을 본 시민들에 의해 무차별 인신공격을 받는다.
결국 극단적인 방법으로 결론이 나는데 그 기자는 그 여성에 의해 살해당한다. 기자의 입장에서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썼던 것이고 크게 죄책감을 못 느꼈었고, 카타리나 블룸을 만나 성적 농담을 한다. 그 태도에 극단적 스트레스에 달해있던 카타리나 블룸(여주인공)은 기자를 살해한다.

언론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폭력성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타진요 사건을 보면 그것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자극에 메마른 네티즌들은 타블로라는 연예인을 공격했고, 진상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어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 없이 한 사람의 인생을 무참히 짓밟아 놓았다.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폭력은 부당한 것임에는 사실이지만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는 가라는 조건이 붙게 되면 언론의 자유는 침해당하는 꼴이 된다.

언론의 폭력에 짓밟힌 명예는 누가 되찾아 줄 것인가? 어느 누구도 찾아줄 수가 없다.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성립된다고 하지만 이것이 언론의 자유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가하는 언론은 누가 심판할 수 있을 것인가도 딜레마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명제는 아무도 심판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와 옐로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중요한 사회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