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나가사키 파파』
2011. 1. 4. 00:23ㆍ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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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이 책의 주인공인 한유나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나가사키에 온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넥스트도어라는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을 한다.
그 식당의 스탭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장차 꿈이 있다면?"
[...]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히데오가 대답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실로 엄청난 답변이십니다."
히데오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뛰어 내려가 사회자의 옆구리를 내질러 버릴까.
나도 사실은 히데오의 대답에 놀랐다. 하지만 비웃을 수 없는 답변이었다. 솔직하고 절박한, 진심 어린 답변이란 걸 사회자가 알 턱이 없었다.
- 69page
히데오는 유기아로 자신의 뿌리를 잃은 소년이었다.
"몰라요, 정말. 이름 없는 것들이니까."
[...]
"이름 없는 것들만 모아둔 거니까."
[...]
기분이 조금 풀렸다. 이름 모르는 물건이 기절할 만큼 많았다. 세상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이토록 많다니.
- 118page
쓰쓰이는 실력있는 1급 요리사로 아이누인이다. 아이누인은 일본 내에서 억압과 차별을 받는 종족이다.
"소속?"
[...]
"용도 같은 거요. 누가 무엇에 필요해 만들었던 물건인지를 모른다는 거에요. 긴 시간이 흐르면서 사용자와 물건과의 관계가 없어지는 거죠. 관계가 없어져, 그래서 혼자가 된 것들. 혼자가 되면 이름도 없어지죠."
"존재만 남고?"
"외롭지만, 존재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 125page
문학의 고전 코드인 '뿌리찾기'를 볼 수 있지만 해석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아이누인인 쓰쓰이는 뿌리에서부터 존재의 의미를 찾기보다 관계가 없어지고 홀로 남는 순수한 존재의 의미를 찾길 원한다.
주인공 한유나, 히데오를 그렇게 위로해 주고 지지해 준다.
"다만, 사람의 맘이란 건 한순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안다는 거지. 거기엔 대단한 이유나 사연이 있어서만은 아니야. 오늘과 내일이 바뀌는 데는 일 초밖에 안 걸리는 것과 같아. 한 달, 한 해가 다 그래. 어쩌면 그들 사이엔 아주 사소한 일이 있었을지도 몰라. 그게 과연 사람 맘을 확 바꿀 만한 걸까 의심될 만큼의 작은 일. [...] 톡 건드리기만 해도 집이 쓰러질 수 있는 거니까."
- 215page
이건 그저 중간에 공감을 해서 따 와 봤다. 사람과의 관계 가운데서 인식하지 못 할 정도로 사소한 것들이 집을 무너뜨린다. 이것을 다 경계하고 무의식에서 나오던가 혹은 기분이 좋아서 내뱉는다던가 하는 것을 단속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스스로 바른 사람이 되는 것. 날마다 경계하고 경계해서 바른 모양이 스며든 사람이 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닐까.
사람 사는 일에 사소하고 단순한 것들. 그냥 지나쳐도 될 텐데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나보다. 큰 일보다는 작은 것에 상처받고 쌓이고 맘 상해서 좋게 보이지 않고, 또 상처받고... 쌓이고... 악순환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쨋건... 한유나는 어머니의 메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언니의 아버지인 사람을 만난다.
강요된 호명이 아니라 자발적 호명. 아버지니까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 불려서 아버지인 아버지. 나도 설명하기 힘드니까 자꾸 묻지 마세요.
[...]
용돈 달라는 딸이 아니에요. 치대는 딸이 아니라니깐요. 함께 사는 딸도 아니에요. 내 가슴에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래요. 아버지를 찾는 것으로 뭔가가 해결될 일은 당초부터 없었어요. '나'는 어째서 아버지를 찾는가? 그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했던 거예요, 저는.
- 292page
자발적 호명이다. 스스로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다. 뿌리에 따라 자신의 경계를 설정해 가두지 않는다. 지극히 노마드적 발상이다.
한유나는 처음에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찾든 말든 자신을 규정하고 만나게 된 아버지를 자발적으로 규정한다. 만나든 만나지 않든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처음 읽어가면서 이건 구효서씨의 소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섬세하고 가벼운 문체로 쉽게 금방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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