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데미안』
2010. 12. 15. 22:58ㆍ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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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좀 정신사납고 수줍음이 많은 형이 있었다.
그 형은 그냥 좀 끌리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그래도 조금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형은 나름 사유가 깊은 사람이었고, 그 때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이야기가 잘 통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 여자친구를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성숙했었고, 책을 깊이 읽을 줄 알고 정치적 성향도 뚜렷한 친구였다.
그러니 내가 그 형의 내면적인 모습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형의 홈피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던 적이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압락사스는 신성과 마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신이었다. 양극성을 모두 가진 신의 이름이다.
여기에 데미안의 기본 배경이 있다.
데미안은 1장, 2장, 3장으로 나눌 수 있다.
1장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유년 시절로 최초의 어두운 세계와 경험하는 과정이다.
2장은 김나지움 시절로 어두운 세계를 경험한 뒤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김나지움 시절을 그리고 있다.
3장은 선함과 악함의 속성을 함께 이해하며 그것으로부터 더 나아가 사랑과 포용을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을 통해 배우는 대학생 시절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젊은 날의 초상>과 비교되는 것이 있는데, 두 책 다 진실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지만 <젊은 날의 초상>에서 바다에서 깨닫게 되는 자아의 모습이란 버티고 견디어 살아내는 것인 반면에, <데미안>에서 자아를 찾는 과정은 내적 투쟁의 과정으로 적극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어두운 세계를 알아가는 것에 싱클레어의 인생의 인도자인 '데미안'은 어두운 세계를 설명하는데 성서적 모티브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과정에서 '에바부인' 또한 성서적 모티브에서 따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최초의 여자, '이브'에서 따온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성서에서 이브는 선악과를 주어 아담을 유혹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선과 악을 알게 인도하는 역할인 것이다.
결국에는 싱클레어는 데미안이자 에바부인이자 자신의 내면의 모습과 진정한 합일을 이룬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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