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31 #9. 1월의 마지막 날

2012. 2. 1. 05:47여행

(오늘은 사진을 안 찍어서...)
2012.01.31

어느덧 첫 달의 마지막 날.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야.

2012년은 설날도 유럽에서 맞이하는구나. 설날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렸었지. 이제 우리 집은 설날을 챙기지 않게 되었거든. 그러니까 뭔가 의례적인 행사는 하지 않는다는 거야. 이게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은 아니겠지. 나중에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안정을 찾으면 내가 가족들을 부르게 될까. 아직은 상상할 수 없어. 어떤 면에서는 나는 정착하지 않는 방랑자 같다는 생각을 해.

우리는 한국 레지오 에밀리아 학회의 학회장님 부름으로 드디어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 시티로 가는 길이야. 로마의 웅장함 같은 도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어. 사실 로마의 웅장함은 좀 질리거든. 그래서 좀 아늑하고 자그마한 도시가 내 마음을 사로잡아 주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너가 필요한걸까.

피렌체를 가 보고 싶었고, 바티칸 시티를 가 보고 싶었는데(그것도 매우!!) 그럴 수가 없게 되었어. 이제 나에게 있어서 이탈리아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버릴 도시가 되었어. 나중에 또 방문하겠다고 기약하는 것은 부질없게 보여. 하지만 꿈으로 남아버려서 이루게 된다면 더 큰 의미로 다가오게 되겠지. 여행으로 다시 오고 싶어.

오늘 숙소에서 스트레스와 찌뿌둥함을 가지고 6시 반에 일어났어. 어제 일이 생긴 팀원은 그래도 일찍 일어났더라구. 오전에 그 일을 처리하러 그 팀원과 함께 길을 나섰고 상점이 여는 10시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어. 정말이지. 택 하나 떼자고, 길을 모르는 팀원과 함께 다녀와야 한다니 그래도 결국 일정 차질없이 다녀올 수 있었어. 그 결과 지금 이렇게 기차에 타고 있고.

4시간을 넘게 기차를 타고 드디어 레지오 에밀리아라는 도시에 도착했어. 기차에서 내리려 하는데 내 캐리어 바퀴 하나가 부러지고 말았어. 새로 사기 전에는 들고다녀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었어. 캐리어에 쓸 돈은 없는데 말이야. 내 캐리어는 3년동안 동거동락하면서 뉴질랜드랑 일본 줄기차게 돌아다녔는데 말이야. 드디어 수명이 다했어. 근데 별로 아쉽지는 않더라.

그 망가진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데 눈이 줄기차게 내리고 있더라. 계속해서 눈이 쌓였어. 우리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어. 레지오 에밀리아가 지방이라 그런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없었어. 상점에 들어가서 위치를 보여주며 길을 묻는데 이탈리아어로 얘기해 주는 거야. 그러다가 근처에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오더니 영어로 말해주고 말이야. 버스를 타서 기사 아저씨한테 여기서 내려달라고 핸드폰을 보여주니 또 영어는 못 하시는지 알아듣고는 이탈리아어로 대답해 주시며 제스쳐를 곁들였어. 그냥 표정만 봐도 내릴 때 되면 말해줄께라고 얘기하는 것을 알겠더라구. 또 내려서 어딘지를 모르니까 동네 주민들이 많이 계시는 상점에 가서 물어봤는데 다들 이탈리아어로 말하면서 얘기해 주는데도 알아듣겠더라구. 지방이라 그런지 아주 친절했어. 한 아저씨는 나와서 이탈리아어로 제스쳐를 곁들여가면서 설명해 주는데 아주 좋더라구. 팀원들은 어떻게 알아듣느냐고 묻는데 난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야라고 대답해 주었어. 약국가서 어린 팀원의 감기약을 사는데도 영어가 잘 안 되더라구. 난 몸으로 설명하는 영어를 쓰니 잘 알아듣는거야. 언어가 안 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했어. 언어를 통해 소통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아듣기 위해 애쓰고 경청하게 되거든.

숙소에 도착했는데 숙소가 고풍스럽더라. 호텔식으로 여권정보 입력하고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향하는데 천장도 엄청 높고 홀이 막 울렸어. 생각해보니 우리는 한 도시에서 이틀 이상을 머물렀던 적이 없던 거 같아. 런던 이틀, 코펜하겐 이틀, 오덴세 이틀, 로마 이틀, 레지오 에밀리아 이틀, 다시 로마 가면 하루 자고 바로 출국하거든.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도시에 적응해야 했고, 새로운 숙소에 적응해야 했어. 완전 강행군이지??? 사실 숙소 적응은 나한테는 쉬웠지만 도시 적응은 쉽지 않은 법이지. 팀원들은 길을 익히는 것은 무리였고 내가 다 익혔지. 그래도 나름 길 찾는 능력이 뛰어나서 잘 찾아다닌 편이야. 어제 저녁 다른 팀과 만났는데 그 팀이 로마에 더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길은 내가 더 잘 찾더라구. 심지어 그 팀 숙소에 따라가서 감기약을 얻으러 갔지만 그 팀은 숙소를 찾지 못 했어.

레지오 에밀리아는 눈이 계속 내려서 잠깐 밖에 산책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어.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을 기약해야겠어.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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