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6. 12:48ㆍ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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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탈로치는 1746년 1월 12일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상인 집안이었다. 그 시대의 공교육은 시민권자들에게 제공이 되었는데 교과서의 지식을 단순히 암기함으로써 습득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내 생각에는 페스탈로치는 감정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학습내용을 암기하기보다는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인식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페스탈로치는 평생 철자법을 극복할 수 없었고, 어떤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실행하는 성급한 성격으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였다.
그는 운동권 협회에도 가입을 하여 활동을 하였고, 정치에도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빈민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정치를 향한 관심은 빈민교육에 대한 열정을 밑바탕으로 연결되게 된다.
빈민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에는 그의 환경 또한 일조를 하는 듯 하다. 1762~63년에 “루소 열풍”이 불었는데, 페스탈로치는 그에 영향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루소의 자연주의적인 성향이 페스탈로치에게도 영향을 주어 페스탈로치가 도시를 떠나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다. 페스탈로치는 이상적이었고, 감정이 풍부하였다. 하지만 그의 성급한 실천적인 성향은 손대는 사업마다 거의 대부분 망하게 되었는데, 상당한 부분에서는 이상적 동기가 좋고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주변 인물과의 관계와 음해하는 세력들 덕분에 실패하게 된 경우도 많아 보인다.
취리히는 그 당시 중상주의를 취하고 있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는 격차가 점점 벌어지게 되었다. 빈민 생활을 하는 어린 아이들이 많아졌고, 그런 아이들은 으레 착취를 당하며 농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페스탈로치는 그런 아이들을 동정과 연민으로 바라보며 일자리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복지 개념의 빈민구호시설을 꾸리게 된다.
그것이 그의 빈민 교육자로서의 첫 발이었다.
그의 연애 또한 범상치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의 자갈밭길 같은 인생역정에 일부분 일조를 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페스탈로치는 그렇게 빈민 아이들을 거두어서 빈민교육에 대한 생각을 수많은 실패 속에서 차츰 발전시켜 나갔다. 페스탈로치는 빈민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베풀길 원했고, “가난한 아이는 가난한 생활에 적응하도록 교육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아이로 교육시키길 원했던 것이다. 이는 아이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나 진배 없었다. 아이들에게 실존을 위한 능력을 키우기를 바랬던 것이다. 이는 칼 마르크스의 원리와도 비슷하다.
그는 스스로 이 이론의 냉혹함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했지만 빈민구호시설에서의 박애적 안락함을 더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그의 농사사업이 실패하고, 후원이 끊김에 따라 빈민구호사업 또한 실패하게 된다. 그는 수많은 실패에 대해서 자책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행동이 먼저인 사람이었고, 문법이나 철자법이 서투르지만 그 사상에 감복하여 그의 작가로서의 성취를 지원해 주는 사람이 없잖아 있었다.
작가로서의 성취는 크지 못하였지만 그의 저서를 통하여 그의 사상적인 배경을 알 수 있었고, 그를 연구하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좋은 자료였다. 그 시대에는 괴테 같은 유명한 작가 사이에서 유명을 얻기란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괴테는 좀 사는 집안이지 않는가.
그의 교육적 사상은 경험주의적이었고 가정중심의 교육을 강조하였다. 사회성의 최소단위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추상적 교육보다는 경험에서 오는 교육, 그리고 자연에서 배우는 교육만을 신뢰하였다.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에서는 옳지 못한 것을 배울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좁은 경험에서부터 배운 지식의 확대를 통해 더 나은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강제적이고 딱딱한 질서가 자연의 교육방법에 있었다면 자연 역시 일방적인 인간을 형성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교육을 통한 인간의 다양성의 존중을 꾀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신실한 교인은 아니었지만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교육이 시작된다고 하였는데 가정보다 신과의 관계를 더 우선시하였다. 이것은 약간 다른 성격인데 가족관계는 공동생활을 위한 사회형태의 모델인 반면, 신과의 관계는 다른 모든 사회적 관계의 기초였다.
그의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외모와 철학적인 면모는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걸림돌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의 경험으로부터 끌어내는 교육을 하였고, 이는 감각을 통한 교육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는 “아이들은 수업내용조차 직관적으로 실제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의식할 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하고, 그와 같은 배경을 배제한 교육은 맞지 않는 놀이기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정치에도 간섭을 많이 하였는데 그의 정치에 대한 입장을 잘 표현해 주는 문장이 있다.
“……내 정치의 처음도 마지막도 교육이다.”
이것이 그가 죽을 때까지 점점 더 확신했던 입장인데, 애국활동 시기와 혁명시절에 급진적이고 직설적이던 정치성향은 그의 생애동안 교육적인 생각들로 집약되었다.
“이러한 불행 속에서 인간교육만이 가장 필요한 예술일 뿐 아니라, 가장 희귀하고 가장 어려운 예술이다.”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은 현대 유아교육과는 역행하는 사상이다.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지만 내 주변의 유아들은 교육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알런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학원을 전전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저 경험의 수준에서만 다니게 한다면 좋으련만...
현대의 유아가 교육을 받는 모습은 교사의 적극적 개입이다. 어머니 품이 가장 좋은 교육장소라는 것은 이 시대에 불가능해 보인다. 분명 현대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높이 살 만하다. 페스탈로치 시대 또한 생존의 문제에 빈민아이들은 교육을 받기 힘들었을 테니 그들은 어쩌면 현대를 부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초등, 중등,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과는 괴리감이 더욱 커진다. 아이들의 자연성에 맡기지 못하고, 주체가 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입시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 깨우치는 능력은 사라져 간다. 분명 아는 것은 많아지겠지만 이해하는 것은 적어진다.
The more know, the less understand. 라는 말이 현대 교육에 딱 적당한 문구이다.
대안학교가 생긴다는 것은 이러한 입시교육이 잘못된 것을 아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말과 상통한다. 비록 페스탈로치의 생은 실패가 많았지만 교육의 사상까지 실패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의 교육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 실패로 이어진 영향이 더 크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페스탈로치의 교육방법은 이 시대에 오히려 복고로 돌아가자는, 아니 옳은 방향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 되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의 ‘암기식 교육’에 고통받는 것은 페스탈로치부터 나까지 충분하다.
물론 방임적인 태도는 부모로서의 직무태만이다. 루소가 다섯 명의 자식들을 고아원으로 보낸 것은 지탄할 만하다. <에밀>에서 루소는 잘못을 시인한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려야 한다.
루소는 빈민이었고, 그에 영향을 받은 페스탈로치 또한 편협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서 세상 가운데서 승리하려면 세상적인 시선 아래에서도 성공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는가하고 생각을 한다. 하나님은 분명 두 마리 토끼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생각을 한다. 유아의 교육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자라고 내 교육사상이 어떻게 세상 가운데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분명 자신의 감각과 경험 가운데 가장 빠르고 쉽게 배운다. 흡수하는 능력의 무서움 때문에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좋은 것만을 빨아들인 스폰지는 좋은 것만을 짜내겠지만 그 가운데 한 방울의 더러운 것이 섞이면 전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아직은 확고한 스스로의 교육관이 서질 못 하였다. 확신으로 밀고 나갈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평생 확고한 교육관이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중심이 되는 것만 확고하게 붙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저 옳은 가치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다. 당연한 것, 옳은 것은 현대에 많이 무시당하고 있다. 삐딱한 것, 이기주의적인 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완고한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세상에 독이 되고 사회에 독이 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내 지금 나이로 옳은 것이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분간할 수가 있다. 현대에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하는데 침묵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원래 아름다워야 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고, 옳은 것 위에서 인생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도 여전히 부족한 인간이지만 공정하기를 노력하고 타협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유치원이 완전한 가정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상담을 배워서 부모를 상담하여 가정에서 교육의 완성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 가장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은 가정이 아닌가.
나는 “사랑은 교육의 완성이다.”라고 생각을 한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것인데 알고 봤더니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라는 성경 구절에서 변형되어 내 마음 속에 떠오른 것이다. 이 말을 믿는다. 부디 잘못된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는 것을 경계해야겠다.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셨던 그림이 있는데 유럽의 산업혁명 당시의 유아들과 현대의 유아들의 모습을 비교한 것이었다. 작은 창에 달과 별이 떠 있고, 아이는 방직기를 돌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설명하였고, 같은 장소에서 방직기는 피아노로 대체된 그림이 현대의 우는 유아들인 것이었다. 듣기만 하였지 아이들이 실제로 이러한 억압 가운데 우는 모습을 보진 못하였지만 어른의 관점에서 심히 공감이 되는 그림이었다.
이렇게 총신대에 들어오게 되었고, 기독교 세계관 아래에서 유아교육을 배우게 되었다.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배울 생각이다. 모쪼록 교수님들께서 잘 이끌어 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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