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순, 『예언의 도시』(이글루스에서 이동)
2010. 10. 15. 12:49ㆍ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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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세상이 올 것이다. 모든 가치가 뒤집히고 집과 길이 텅 빌 것이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배운 사람을 저주하고 이단이 사제들을 박해하리라. 코나무를 심으면 화를 면하리라.
까마귀 떼가 세상을 덮으리라. 그들이 세상에 뿌리는 과일은 '로비어'이다. 둥글고 반짝이는 껍질은 잘 익은 자두처럼 달콤해 보인다. 그 껍질을 벗기면, 그러나 네가 얻는 것은 그 속에 득시글거리는 이. 하얀 이, 이, 이, 이...
너희들은 헐벗고 굶주려 미친개처럼 거리를 헤맬 것이다. 저주받은 시기의 저주받은 자들이여, 피를 흘리리. 새빨간 피가 코끼리의 배를 적시도록 차올라 흘러내린 후에야 비로소 평화가 오리마는 그것으로도 끝은 아니다. 너희들은 다시 나를 찾을 것이다.
- 예언의 앞부분
방학동안 독파하기로 한 문학동네 소설 수상작 중 3회 수상작인 '예언의 도시'.
캄보디아라는 이국의 땅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크메르루즈 혁명군에 몸 담고 있었던 늙은 타와 그의 딸 스라이.
그리고 한국에서 실패하고 캄보디아로 도피한 남상훈(이정배), 한국 참사관의 아내, 숙영.
수많은 줄을 가지고 있는 호텔 엔지니어이며, 한국인이지만 어릴 때 독일로 입양된 조지.
캄보디아에서 펼쳐지는 사랑, 욕망, 실패, 배신의 드라마.
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언제나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워왔다. 정면으로 자신의 실패를 마주 보는 사람만이 다음 실패를 막을 수 있다.
상훈은 한국에서 부동산으로 실패하고, 재기하기 위해 여권을 위조하여 이정배라는 가명으로 캄보디아로 온다.
멀리 있는 걸 그리워 할 순 없어. 정말 견딜 수 없이 그리운 건 가까이 있는 거야. 저렇게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것.
스라이는 상훈을 사랑한다. 상훈 역시 스라이를 사랑한다.
숙영은 그의 위태로운 모습을 감추어주고 싶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한 사람의 사랑은, 상대를 약하게 만드는 일밖에 하지 못한대요."
숙영은 단단한 모습 속에 실패하고, 상처받은 내면을 갖고 있는 상훈에게 끌린다.
책을 읽는 동안 상처받고 실패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가 하였지만, 예언의 내용은 비극적이다.
책의 제목과 오버랩 되면서 결국 비극인가 하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였지만, 시종일관 어두운 모습 속에 역설적으로 빛을 발견할 수 있다.
구원은 서방에서 오나, 끝이 아니다.
모든 것이 번쩍이고 있다. 황금 날개, 황금 날개가 까마귀로 덮였던 하늘을 다시 가리운다. 그 빛에 너희들의 눈은 멀고 놀란 영혼은 침묵하리라. 새로운 허기가 너희를 덮쳐 빈 육신만이 밥 냄새에 미쳐 달리나 그것은 네 꼬리에 매달린 밥풀, 영영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을 깨우는 첫 소리가 있으리니, 미친 움직임을 멈추고 그 소리를 들으라. 그것이 구원의 시작.
- 예언의 뒷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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