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03 #12. 돌아가는 길

2012. 2. 7. 19:55여행


2012.02.03

로마에서 하루를 자고, 귀국하는 날이 밝았어.

어제 망가진 캐리어를 하루 종일 들고 다니느라 몸이 많이 피곤했나 봐. 일어나는데 몸이 깨질듯이 아파서 힘들었어. 어제, 그리고 오늘, 팀에서 문제가 많이 생겼었어. 그게 스트레스가 많이 되었나 봐. 처음 가지고 있었던 자신감은 어디 가고 위축되어 버렸지.

아무튼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 경유를 2번이나 해야 하거든. 오스트리아 비엔나, 그리고 북경. 사실 비엔나는 좀 가 보고 싶었어. 오스트리아 항공은 타고 내릴 때 모짜르트의 음악이 흘러나오더라. 베토벤인가 모짜르트인지 잘 모르겠지만 모짜르트 같았어. 내가 피아노를 모짜르트까지 치다가 말았으니까 말이야.

면세물품을 사려고 하는데 뭘 살지도 모르겠고, 클래식한 메신저백을 사고 싶은데 끌리는 게 없더라구. 동생 거도 챙겨주려고 하는데 여자들은 자기 취향이 아니면 그다지 크게 고마워 하지 않으니까 사 주기도 힘들었어. 동생 취향을 어느 정도 알지만 없더라구. 그래도 아직 북경이 남았으니까 느긋하게 마음 먹기로 했어.

공항에서 와이파이를 잡았는데 이전에 볼로냐에서 만났던 이름 모르는 동성 친구에게서 메일이 왔어. 내가 명함을 주면서 메일 주소로 페이스북에서 찾으면 된다고 말을 해 줬거든. 근데 못 찾았나 봐. 그래서 그 친구가 자기 이름은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 페이스북에서 추가해 달라고 메일을 보내왔더라구. 내 이름도 평범하진 않은데 말이야. 여튼 반가웠어. 잊지 않고 잠깐 지나친 인연에 이렇게 메일도 보내주고 말이야.

북경 가는 비행기에서도 우리 팀은 다 따로 앉았어. 서로 따로 앉고 싶어해서 나는 별 말 앉았어. 이 정도면 별로 좋은 일은 생기지 않았다는 걸 짐작하겠지. 근데 마지막 북경에서 한국가는 비행기는 내가 미리 좌석지정을 해 버려서 같이 앉게 되는데 어색하겠다. 이런 일이 생길 줄 내가 알았나. 서로 좋자고 하는 일에 서로 간의 입장과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쌓여서 터진 거거든. 앞으로 잘 해 보자고 얘기를 꺼냈다고 하는데 한국 가면 더 심해질 거 같아서 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어. 어려운 일이야. 서로 다른 환경과 상황,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지낸다는 것은 말이야.



그러한 연유로 따로 앉게 되었는데 옆에는 이쁜 묘령의 여인이 앉아있었어. 표현이 참 고전적이네. 근데 뭔가 자신감이 있어보였어. 난 지금 자신감 상실인데 말이야. 그 친구는 내가 방송의 중국어를 따라하니 말을 걸었어. 중국어 하냐고 말이야. 그래서 난 한국인이고 중국어 못 한다고 말을 했어. 그 친구 이름은 캐리였는데(중국인들은 영어이름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던 걸 기억했어) 칭따오에서 왔더라구. 맥주로 유명한 칭따오 말이야. 새삼스럽게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이 생각났어. 칭따오 맥주가 물보다 싸서 많이 사 마셨거든.

그 친구와 비행기 안에서 트래블 메이트가 되었어. 그 친구는 휴가동안 혼자 여행을 하는 거라고 했어. 여행하는 동안 그래도 친구가 생기긴 했네. 볼로냐에서 공부하는 그 친구, 지금 내 옆에 앉아있는 캐리, 그리고 친구는 아니지만 고마웠던 덴마크의 카린. 영국에서는 4~5년만에 만난 친구가 너무 반가워서 오두방정을 떨었었고. 여행 뿐만이 아니라 못 만난 친구도 많이 아쉬웠어.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는 말레이시아 친구, 체코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마약 중독자 친구, 오스트리아의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체코 여자아이들하고는 미리 연락을 했지만 일정상 만나고 올 수가 없었어. 만약 여행이었다면 다 만나고 좋은 인연들을 더 많이 만들고 올 수 있었을텐데 말이야. 나한테는 그게 아쉬웠지.

하지만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어. 팀원들은 쇼핑을 많이 못 해서 나한테 화를 많이 냈었어. 그러니까 입장이 다른 거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잣대를 남에게 강요하면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나 봐. 여전히 살아가면서 부딪혀야 하는 문제일꺼야.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점점 나이가 들고 꽉 막힌 어른이 된다면, 꼰대가 되어서 누군가가 넌 편견에 가득찼어. 꼰대야. 라고 일깨워주면 나는 절망하고 말텐데 말이야.

지금은 러시아 쯤을 지나고 있어. 이번 일로 난 무엇을 배우고 온 걸까.

이렇게 마냥 좋지는 않은 여행도 있구나. 어린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레지오의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떤 아이는 실수는 아름다운 거라고 말했지. 실수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 했을거야. 라고 했던가.

곧 돌아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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