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광장』

2011. 1. 22. 22:23


광장/구운몽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대표소설
지은이 최인훈 (문학과지성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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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원래 선정되려던 것은 <강대국 흥망사>였는데, 페이지수가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것이었다.
일 주일에 한 권씩 읽고 있는 터인데, 이 전에 장모형님의 <소비의 사회>에서 크나큰 타격을 받고, 쉬어가자는 의미에서 선정을 한 거지만 <강대국 흥망사>는 정보의 부족으로 선정된 책이었다.

다시 회의를 소집하여 바꾸게 된 책은 <광장>.
고3 수험생 시절 자주 보던 지문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사실 이거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거 같다.

주인공 이명준은 서울대 철학과 3학년. 세상에 비관적이지만 스스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 수동적 인간이다.
남한에서 그냥 그렇게 살다가 윤애를 만나게 되고, 아버지가 북한에서 영웅이라는 이유로 국정원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다.
뛰는 심장을 가지고 꿈을 이루고자 남한에서 살던 이명준은 법 위에 있는 국가의 폭력을 경험한 뒤, 회의에 빠진다.
그 후 인천에 있는 윤애의 집에서 기거하게 된다.
이명준은 윤애를 육체적으로도 탐하게 되는데, 그것을 사랑이라 믿었고, 윤애 또한 이명준을 좋아하지만 어떤 때는 육체적 관계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명준은 윤애의 거부의 몸짓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현인 줄 알았고, 그 이후 월북한다.

북한에서는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공산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개인의 특수성과 자유를 막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영웅으로 들었던 아버지의 꾀죄죄한 삶의 모습에도 환멸을 느낀다.
그 와중에 은혜라는 무용수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윤애와는 달리 은혜는 적극적이다. 육체적으로도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은혜는 모스크바로 장기 순회공연을 간다고 했고, 그런 은혜를 명준은 적극적으로 말린다. 은혜는 안 가겠다고 눈물도 뿌려가면서 말했지만, 결국 간다.
하지만 윤애 때와는 달리 명준은 크게 상처를 받지 않는다. 은혜가 말할 그 때는 진심이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고, 그 와중에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명준은 전쟁터에 지원해서 나가고, 은혜도 간호병으로 지원해서 명준을 만나게 된다.
둘만의 동굴에서 사랑을 나누고, 은혜가 아이를 임신했지만 전쟁 중에 죽는다.

그리고 명준은 전쟁이 끝난 후, 석방이 되면서 체류국가를 선택하는데 완고하게 중립국을 고집한다.
남한과 북한 어디서도 자신이 원하던 광장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도로 가는 배 안에서 두 마리의 갈매기를 보고, 명준은 은혜와 자신의 아이를 투사하게 되고 자살한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광장과 밀실이라는 주요 개념이 계속적으로 등장한다.
명준이 꿈꾸는 광장은 소통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하며 밀실은 개인만의 독자적인 공간으로 존재한다.
광장과 밀실 개념을 통해서 남한과 북한의 사회를 대비시키고 있으며, 사랑의 대상이었던 윤애와 은혜를 대비시키고 있다.

이 책 이후에 곧바로 라캉의 욕망이론을 읽었는데, 욕망이론을 읽으면서 이명준이 소설 속에서 성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징계에서는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명준은 둘이 일치한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리어왕>에서 왕을 사랑하던 코델리어가 얼만큼 사랑하는지 말해보라고 했을 때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했던 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파멸에 이른 것처럼, 명준 또한 윤애의 행동으로 그렇게 믿어버렸다.

하지만 은혜를 만날 때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은혜가 떠나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났을 때, 명준은 이를 받아들인다. 이는 명준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배에서 자살할 때 명준이 깨달은 것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벗어던진, 실재계의 '존재는 죽음이다'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했던, 주체적으로 존재하고자 했던 명준은 쾌락을 추구한 것이지만 쾌락이 고통을 통한 쾌락보다 더한 희열의 단계까지 갔던 것이고, 그 최종적인 결과로 죽음이 귀결이 되었던 것이다.

명준이 스스로 선택한 큰 일 2가지 사이에 명준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월북한 사건. 그리고 자살.

소설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광장과 밀실 개념, 남한과 북한의 체제 비판, 그리고 사랑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 뒤 정신분석 책을 읽고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작가 최인훈은 25살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혼란한 시대에는 이럴 수도 있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