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4 #2. 비 오는 날

2012. 1. 25. 04:52여행



2012.01.24

아침에 가지고 온 음식을 처리하고 싶어서 스팸을 구웠어.

여행갈 때 짐을 나누어 든다면 먹을 것을 가지고 가는 사람이 현명하다는 우화 같은 걸 어릴 때 본 기억이 있어. 먹을 것은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나중에는 빈손이 된다나??? 하지만 그것도 계속해서 먹어야 한다는 거. 그리고 양이 엄청나면 곤욕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거지.

우리 마음도 무거운 짐이 있다면 그것을 계속해서 줄여나가는 연습을 해야 하지만 그 짐이 엄청나다면 처리할 방법도 보이지 않을 거 같아.

 

밥을 든든히 먹고 숙소를 나왔더니 비가 오는 거야.

우린 런던피플이 되고자 우산도 안 가지고 빗 속을 걸어갔지. 하지만 나는 어그부츠를 신고 있었어. 나중에 내 어그부츠는 사망했지... 게다가 비는 생각보다 많이 내리는거야. 이 정도 비는 맞고 걸어가는 게 무식한 짓이란 걸 런던 사는 친구를 통해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


 

너가 보고 싶다던 버킹엄 근위대 교대식은 비가 많이 온 관계로 취소가 되었어. 내 생각에 근위병의 모자는 엄청 크잖아. 게다가 털모자고. 비에 젖는다면 꼴이 우스꽝스러울 거야. 궁전의 근위병으로는 좀 체면이 안 서는 노릇이잖아.

우린 결국 행선지를 변경하여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했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다는 웨스트민스터역에서 내리니 그 유명한 빅벤이 떠억 있더군. 마침 10시라 뎅뎅거리는 빅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 건물이 참 멋지더군. 우중충한 날씨에도 꽤 훌륭했어. 다리 건너편에는 런던아이라는 대관람차가 있었는데 그저 그랬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가려는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고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있다는 거야. 도대체 뭐가 뭔지 몰라서 웨스트민스터 사원 같은 건물 건너편에서 훈남 한 사람 붙잡고 웨스트민스터 캐떠드랄이 어디요? 하고 물었어. 근데 내가 예상한 그 건물을 가리키면서 ‘That one~’이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가 봤더니 abbey였어. 분명 캐떠드랄이 아니니 여긴 사원인 거 같은데내 캐떠드랄이 발음이 구렸나. 아니면 런던 훈남도 모르는 건가 잘 모를 일이었지.

사원은 멋졌어. 무슨 고딕양식? 뭐 그런 걸로 지었고, 역사도 좀 있더군. 여러 왕이니 성인이니 왔다갔다 했더라. 사원과 성당은 로마 카톨릭과 영국 성공회라는 것이 다르대.

쓰고 있다보니 벌써 졸리다. 아직 7시 반도 안 되었는데... 아마 오늘 새벽 1시도 안 되어서 일어나서 그런 걸까

그냥 바로 빠르게 요약해야겠다.

트라팔가르 광장을 보고(참 멋진 광장이었지. 사자상이며 분수가 뿜어내는 런던 하늘과는 어울리지 않는 투명하고 푸른 물줄기며) 그 옆의 내셔널 뮤지엄에 들어갔어. 도네이션 하라는데 우린 뭐 가난하니까. 루벤스의 그림들과 윌리엄 터너, 모네, 고갱, 고흐, 램브란트의 그림들을 봤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봤는데 늘 매체에서 보던 거라 감흥이 별로 없더라구. 미학을 조금 공부해서 그런지 루벤스의 그림은 새롭게 볼 수 있었어. 다른 것들도 알고 보니 재미있더라구.

그리고 친구와 재회하게 되었지. 군대 친구인데 2~3년 만에 보는 것이 너무 반가웠어. 간디가 나왔다는 유명한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야. 이런 저런 이야기들 앞에 우리 팀원들 소외되고, 나는 여자들 틈에서 지내다가 군대 친구 만나니까 너무 신나서 친구와 얘기를 많이 했어. 팀원들이 오빠, 이런 모습 처음 본다며 놀랬드랬지. 난 팀원들에게 딸만 있는 집안의 아빠의 심정이 이런 걸꺼다라고 대답했어.

점심 먹은 장소 근처에서 팀원들은 뮤지컬을 보기 위해 표를 끊고(나는 뮤지컬에 관심이 없고, 런던에 별로 애착이 안 갔기 때문에 그냥 숙소에서 쉬기로 했어), 테이트 모던 아트라는 갤러리로 향했어. 뮤지컬을 엄청 많이 공연하는데 마치 대학로 같더라. 근데 스케일이 뮤지컬이라는 게 다른 듯 했어.

테이트 모던 아트는 말 그대로 현대 미술 작품을 모아둔 전시건물이야. 건물부터 물씬 현대적이지. 콘크리트로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물.

같이 간 디자인하는 친구와 현대 미술에 대해서 이야기 했어. 현대 미술은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미술이고, , , , 형에서 형이 파괴되는 것이 현대 미술인가 등등.

그리고 현대 미술은 작가의 의도가 있더라도 독자가 해석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한 작품을 놓고 서로의 느낀 점을 이야기 해 보았지. 사물을 해석하는 힘은 개인의 주관과 경험에서 오는 거 같아. 그리고 어떤 것은 진짜 나도 하겠다 하는 생각?

이게 바로 현대 예술이구나. 나도 하겠다. 라고 하니 디자인 전공한 친구가 피카소는 천재가 쓱 그은 거랑 범인이 쓱 그은 거랑은 다르다고 했대. 피카소가 한 말이니까 뭐 믿어야지.

결국 나는 숙소로 돌아왔고 그네들은 뮤지컬을 보러 갔어.

그네들이 뮤지컬을 다 보고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연락을 준다고 했건만 나는 피곤해서 보러 갈 수 있을까.

잘 거 같아.

 

오늘은 처음 보는 특별한 인연을 못 만났어. 지나가다가 얘기해 본 브라질 연인. 그리고 테이트 아트에서 나오는 길에 레지오 에밀리아라고 써진 것을 보고 이탈리아 가냐고, 자기 동네라고 말해 주던 부부들이 기억에 남네.

하지만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가 있으니오늘은 그것으로도 좋을꺼야. 너가 오늘 현진이를 만난 것처럼.

 

너가 그립지만 연락을 멈추어 보면 뭔가를 확인할 수 있겠지. 답은 다를지 몰라도.

이건 사지선다일까?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일까? 아니면 주관식일까.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01.26 #4. 너를 이해하는 것  (0) 2012.01.27
2012.01.25 #3. 첫 탐방  (0) 2012.01.26
2012.01.23 #1. 여정  (0) 2012.01.24
다시.  (0) 2011.10.17
경복궁 나들이  (0) 201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