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 『이방인』

2011. 5. 7. 00:21


이방인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알베르 카뮈 (책세상,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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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그냥 붙여넣기!!
정리하기가 힘든 이유는 지엽적인 깨달음이 여러 군데에서 터져 나와서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언뜻 언뜻 떠오르는 스플래쉬한 깨달음도 붙잡아 두기가 너무 힘들다.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이방인>. 주인공인 뫼르소는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고 장례를 준비하러 길을 떠난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뫼르소는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피곤함과 태양으로부터 오는 더위를 느낀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 날, 뫼르소는 바다에서 전에 알던 마리를 만나 하룻밤을 함께 한다. 마리는 뫼르소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뫼르소는 마리를 사랑하지 않지만 결혼은 이래저래 상관없다고 얘기를 한다.

뫼르소는 창고지기인 레몽과도 친해진다. 레몽은 마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평을 듣고 있는 사람이지만 뫼르소는 그가 마음에 든다.

레몽과 마리와 뫼르소는 해변에 놀러갔다가 레몽과 적대관계에 있는 아랍인 패거리를 만나 다투게 된다. 싸움이 있은 후, 뫼르소는 홀로 바다를 향해 걷던 중, 그 아랍인 패거리 중 한 명을 만나는데 태양이 뜨거워서 그 아랍인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뫼르소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뫼르소의 죄가 무거워지고 결국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이 글의 문체는 지극히 간결하고 건조하다. 마치 뫼르소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 같다.

실존주의 작가로 불리우는 알베르 까뮈가 뫼르소를 통해 말하고자 하였던 것은 무엇일까.

     

<이방인>에서 나오는 뫼르소는 간결하고 건조한 사람같지만 감정에 대해서는 건조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만 그 감정은 사회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뫼르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뫼르소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 존재는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힘든, 말 그대로 Stranger이다. 전 주에 다루었던 <변신>에서의 그레고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결말은 독자가 보기엔 비극적이긴 매 한가지이다.

뫼르소와 그레고르는 어떻게 다른가.

   

까뮈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해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이해하려 하는, 어떠한 추론관계도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말하고 있다. 마치 외젠 이오네스크의 <대머리 여가수>라는 부조리극이 떠오른다. 뫼르소는 부조리를 이해한 사람인가.

뫼르소 외의 다른 사람의 모습은 어떠한가.

 



주체적인 자신을 고수하던 뫼르소는 과연 '이상한 사람'이었는가.
소설의 극단적인 표현 때문에 나는 보편적 통념과 타협하지 않는 뫼르소에게 불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뫼르소같다는 모습에 뜨끔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씹어먹는 사형선고마저 부조리를 이해하고 그것에 저항하지 않는 모습조차도 뫼르소의 자아일 수 있는데 차마 나는 그리하지 못 하겠다.
아직 부조리를 이해하고, 순응하지 못하는 나는 주체성을 확립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주체를 잃었는가.
사형선고를 받아들이는 모습에, 자신을 제외하고 세상이 자신을 해석하고 자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받아들이는 그 모습이 오히려 뫼르소 자신의 세계가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주체를 가진 개인의 실존은 죽음을 넘어서서 명백하다.